2005년 03월 07일
[펌] 위대한 사진가가 되는 법(번역)
제가 자주 가는 켄로크웰 닷컴에 있는 글을 하나 번역해 봤습니다.
다음 글은 ‘사진가론(On Being a Photographer)’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997 데이비드 헌(매그넘)과 빌 제이
주제 선정
사진가론(On Being a Photographer) 中
매그넘 작가인 데이비드 헌과 빌 제이의 대담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파란 기타가 있지, 당신은 있는 그대로 사물을 연주하지 않아."
그 사람이 대답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은 파란 기타 위에서 변화한다네”
월리스 스티븐스
‘파란 기타를 가진 사람’ 중에
빌 제이: 우리가 몇 가지 정의에 대해서 토론할 때 당신은 사진의 핵심적 특징은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많은 젊은 사진가들이 매체에는 매혹되어 있지만 무엇을 찍을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이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헌: 맞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점의 문제입니다. 누가 사진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사진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빌 제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시죠.
데이비드 헌: 많은 사람들이 애매한 방식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탑 패션 사진작가나 전쟁사진 작가의 삶에 관심을 두거나 아름답고 기능적인 기계, 즉 카메라의 입수와 찬탄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암실작업의 비밀스런 의식에, 또는 그들이 유명 누구누구와 같은 사진을 찍기만 한다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어떤 인물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관심은 개인적으로 얼마나 즐거운가의 문제를 떠나서 결코 사람이 사진가가 되는 길로 이끌어 주지 않습니다. 이유는 사진이란 단지 어떤 사물에 대해 느끼고 있는 열정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도구이며 운송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최종 결과가 아닙니다. 비유를 하자면 지위를 과시하고 성생활을 개선하자는 생각으로, 새 가죽시트의 냄새가 좋아서, 또는 아름다운 기계장치에 매혹된다는 이유 등으로 자동차를 사는 것과 같겠죠. 그러나 차가 실제로 어디론가 당신을 데려다 주지 않는다면 다 쓸데 없는 짓입니다.
빌 제이: 사진의 목적은 사물이나 사람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조건 하에서 어떻게 보이느냐를 밝혀내고 그 결과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헌: 그래요.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주의사항을 집어 넣어야겠네요. 방금 말씀하신게 맞기는 하지만 단지 뭔가를 평범하게 기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사진들은 같은 주제를 놓고 찍었는데도 다른 사진들보다 명백하게 더 흥미롭고 더 아름답고 더 자극이 됩니다. 더군다나 이런 사진들에는 그 사진을 찍은 개인의, 음 더 좋은 말이 생각이 안 납니다만, 어떤 독특한 스타일같은 게 지워지지 않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간단한 기록물들을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사진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빌 제이: 어떤 답을 주시겠습니까?
데이비드 헌: 결국 주제 선택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사진가는 사진의 주제에 대해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각적인 관심이 아니라 강렬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호기심은 장기간에 걸친 집중적인 조사와 독서, 토론, 연구와 많은 실패한 시도들로 이어집니다.
빌 제이: 저는 이런 생각에 흥미를 느낍니다. 어느 정도의 지속적인 열정을 지니고 사진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제에 대해 매혹되어 있어야 한다는 건 저에게는 자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찰력이 넘치거나 독창적인 주제 표현을 해내야 하는 충분히 긴 시간 동안의 창조 행위 속에서 흥미를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도 이 교훈을 당신에게서 배워야 했지요. 첫 장에서 내가 말했듯이 1967년에 당신이 내게 내 사진들이 지루하다고 말하고 나서야 나는 ‘다른 사진작가 같은 사진작가’가 되려는 노력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구원이었어요. 나는 성공이나 위신이나 명성 따위의 생각이 없이 그냥 즐거운 해방감을 느끼며 나에게 가장 흥미가 있는 주제에 단순하게 집중하면서 새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요.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헌: 젊은 사진가들이 혼란을 겪는 이유는 대부분의 선생과, 강좌, 워크숍, 서적들, 뭐 그런데서 사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법들을 사용하며 왜 사진이 달라보이고 예술적으로 보이는지가 주제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진가라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주제 선택자입니다. 예술적인 지향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엔 안 들지 몰라도 사진의 역사는 무엇보다 주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진가의 첫번째 결정은 무엇을 찍을까 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당신의 호기심, 매혹, 열정은 당신이 그 주제로 찍은 사진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빌 제이: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돌아가신 위대한 사진가인 랠프 스타이너는 제가 발표한 글을 하나 읽으면 저에게 웃기게 장난치는 편지를 써보내곤 했어요. 이런 말로 끝맺음을 했었죠. “하지만 아직 당신은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지 나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어. 이게 중요한 건데 말야.”라고요. 그리고 그의 말이 옳습니다. 그럼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서 주제 선택에 관해서 젊은 사진가들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해 주시죠.
데이비드 헌: 정원의 요정을 찍으세요!
농담입니다. 제 생각은 찍을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한다는 것은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별로 공감해 줄 것 같지가 않아요. 가능하지도 않은걸요. 다른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빌 제이: 그렇죠, 그래도 우리는 주제 선택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데이비드 헌: 처음 할 일은 공책을 들고 조용한 시간에나 아니면 생각이 떠오를 때 당신에게 정말 흥미 있는 사물들의 목록을 작성하세요. 다른 말로 하자면 사진이랑 관계없이 일단 당신을 매혹시키는 주제들의 목록을 작성하라는 겁니다. 어느 것이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의 열정과 호기심을 불타게 할 것인가? 이 단계에서는 사진과는 전혀 관계없이 목록을 만드세요. 가능한 구체적으로 골라야 합니다. 리스트를 완전히 다 만든 다음에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서 하나씩 줄여나가기 시작합니다.
주제가 시각적인가? 실존철학이라든가 구약성서, 외계행성의 지적생명체 같은 (당신에게) 매혹적인 주제들을 안심하고 삭제할 수 있습니다.
실행 가능한 주제인가? 통상적인 기준에서 당신이 편한 대로 사진 찍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주제들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덴버에 사는 재력이 별로 없는 젊은 사진가라고 한다면 적어도 사진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불탑이라는 주제는 제거해야겠지요. 또 유명한 영화배우에 대한 관심도 떨어내야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실행 가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 주제인가? 적어도 상당량의 연구를 마칠 때까지는 당신이 무지한 주제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문간에 앉아있는 낙오자들의 사진을 슬쩍 찍어 대는 행위는 도시빈민 문제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건 탐구가 아니라 착취입니다.
주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로운가? 이건 까다로운 문제이나 스스로 물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똑같이 매력적인 주제들이 몇 가지 남아 있다면 그 중에 어느 것이 타인에게도 재미있을 것인가? 당신이 예상하는 타인은 적은 수일 수도 있고 전문화된 집단일 수도 있는데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또 대중적 요청에 맞춰주는 문제를 무시하고 나면 이런 질문이 까다롭습니다.
빌 제이: 이 마지막 논점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군요. 나는 직업 강사로서 정보를(습판시대의 지형도 제작 사진가들에 대한 나의 열정을) 지루해 하고 관심도 없는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진행되기 전에 청중의 주의를 끌어 유지해야만 합니다. 다른 한 면으로 보자면 나는 전문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중적 요청에 영합하는 일과 관객-청중의 주제에 대한 집중 지속시간이나 관심에 대한 정중한 고려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엉덩이 요소에 대한 존중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청중이 얼마나 자기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나를 의식하냐는 거죠. 당신도 자신의 관심과 감상자의 관심 사이의 이와 유사한 미세한 경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헌: 그렇죠, 만약 모든 최종 선정 주제들이 똑같이 당신에게 흥미로운 거라면 다른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보는 주제를 선택한다는 게 타협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물이 다른 것보다 보기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 규정하는 바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회색지대를 신물나게 논의하다가 본질적인 논점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이 선택한 주제물은 a)적어도 의미있는 작업물들을 생산해 내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은 당신의 열정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고 b) 텍스트로서가 아니라 이미지화 되기 알맞아야 하며 c)지속적으로 접근이 가능해서 당신이 원할 때나 시간이 있을 때 반복해서 같은 주제물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빌 제이: 나는 당신의 충고, 즉 가능한 구체적으로 하라는 명제에 몇 가지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흥미가 가는 주제의 목록은 너무 광범위해서 유효하지 않은 주제들을 포함한다는 것 불가피한 사실입니다. 나는 연구 작문 세미나 시간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주제 선택에 대해 과도한 분량의 시간을 할애해야만 합니다. 학생들이 매번 연구 주제를 제시해 오면 한 편의 글이 아니라 한 책 분량의 주제가 나옵니다. 작고 구체적이며 실행가능한 프로젝트를 하라고 조언하는게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초상화’를 제안하지만 저는 ‘루이스 캐롤이 그린 앨리스의 이미지’를 제시하지요. 학생들은 “사진 분리파(secession)”를 제시하는데 저는 “분리파 작가들의 모티프로서 유리공”을 제안합니다. 학생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사진’을 선정하는데 저는 뻬드로 메이어의 디지털 이미지를 추천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없고 방대하고 일반적인 주제들을 처리가능한 부문들로 나눌 필요가 있는 경우만 있더군요.
데이비드 헌: 시각 에세이를 위한 주제선정의 문제도 같습니다. 내가 ‘가능한 구체적으로 하라’ 라고 하는 건 관리가능하고 적당한 시한 내에 완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착수하라는 것이지요. 또한 주제가 더 정교할수록 연구를 수행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제 몇 가지 일반적인 사례들을 들어보지요. 당신의 관심목록에 ‘교육’ 같은 항목이 있다면 그걸 ‘어떤 어떤 학교에서 나의 학창생활’로 바꾸라는 겁니다. ‘꽃’은 ‘건축과 관련된 식물’로, ‘인물화’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클리블랜드의 조각가’들로 환원합니다. 어쨌든 무슨 말인지는 알겠죠…
빌 제이: 많은 젊은 사진가들에게 이러한 목록 작성이란 건 과도하게 실용적으로, 주제물에 대한 너무 냉정한 처방적 접근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은 시각적 모험의 즐거움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할 겁니다.
데이비드 헌: 글쎄요. 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가 있고 그냥 사진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뭔가 갑자기 튀어나와 스스로 이거라고 선전하기를 바라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젊은 사진가 여러분, 사진가의 행동방식에 대한 당신의 환상을 모독했다면 그 점은 미안합니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건 40년 동안 나는 이 세계 최고의 다양한 매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사진가들과 대화해왔고 사진을 찍는 그들의 접근방식에는 한가지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주제물에 대해 열정적이며 잘 알고 있었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계획을 한다는 점입니다.
빌 제이: 이 미리 계획한다는 주제에 대해서는 좀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열의 넘치는 젊은 사진가들이 제기할 다른 반대의견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제물의 강조에 대한 모든 논의는 우리가 단지 인물과 장소를 엄격하고 단선적으로 기록하는 것만을 옹호하는게 아니냐는 거죠. 우리가 모든 사진가들의 출발점에 대해서 단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아이디어란 것은 전혀 제한적인게 아닙니다. 지속적인 복합성의 진화를 위한 더 넓은 영역을 제공하고 따라서 더 큰 개인적 해석의 범위를 낳습니다.
데이비드 헌: 맞습니다. 처음에 주제물이 더 좁고 더 명확하게 정의된다면 스타이너가 말했듯이 “카메라를 겨누어야 할 방향”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고 더 많은 사진을 찍게 됩니다. 촬영을 더 많이 하면 주제에 대한 열정과 지식도 더 커집니다. 지식이 더 커지면 더 적확하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사진의 범위와 깊이를 증대시켜 줍니다. 따라서 이 과정이 스스로의 자양분이 되는 거죠.
빌 제이: 제가 잘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제가 정원을 조성한다면 나무를 심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나무줄기, 큰가지, 작은가지, 잎과 조각들을모아서 즉석 나무를 얻어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죽은 것이겠죠. 그 나무는 뭔가 다른 것으로 자라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시작점이라는 것은 주의깊게 돌보고 상당한 인내를 보이면 때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형태의 나무로 자라나는 묘목 같은 것입니다. 저에게는 사진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 작품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깊이 뿌리 내린 유기적 성장을 위한 가장 큰 터전은 선정된 주제를 시각적으로 직접 만나본다는 가장 간단한 전제사항과 더불어 개시됩니다.
데이비드 헌: 당신도 알지만 문제가 되는 사안들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대답하기가 용이한데 정직성의 문제 같은 것도 저에게는 사진을 찍을 때 그럼 무엇이 부정직한 것이냐를 알아내면 만족스럽게 해결됩니다. 주제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물에 대한 강조의 반대는 뭐냐? 그건 순간의 욕구충족을 위해 미친듯이 달려드는 것으로 이는 시각적 현란함(pyrotechnics)을 과시하지만 깊이나 반향이 의심스러운 작품들로 너무나 자주 귀결되고 맙니다. 젊은 사진가들은 남다름을 추구하려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새로움의 탐색은 대개 유별난 기교(technique)를 의미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죽은나무 증후군이죠.
데이비드 헌: 여기엔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지가, 에드워드 웨스턴의 말처럼 “사물 그 자체”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으면 사진가는 실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사진가는 단지 자아를 기준으로만 이미지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이건 내가 느낀 방식이다” 라고요. 머지않아 이런 태도는 아주 진부하고 피상적인 작품들을 정당화하려는 헛된 노력들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번쇄한 정신분석 작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빌 제이: 내가 들어야만 했던 끝날 줄 모르고 제멋대로이면서 때로는 불가해한 사진 평론들에 얼마나 몸서리쳤던지요. 자아에 대한 그 모든 말에 대한 제 대답은 사진가들이 스스로에 대해 사진가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판단을 구하고 있다는 거였는데 그건 바보같은 일입니다. 모든 젊은 사진가들의 인성의 깊이가 신의 계시를 요구하는 정도라고 가정하는 건 지나쳐요! 그리고 만약 자아가 천박하고 좁고 피상적이고 보잘것없다면, 그들도 인정하는 건데 그 결과로 나오는 사진도 그와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데이비드 헌: 그런데 기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 말은 이런 이미지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어떤 객관적 기준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나는 이렇게 느껴”라고 했을 때 당신이 “아니, 너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데이비드 헌: 잘 들어보세요, 나는 개인적인 처방을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반감이 없습니다. 그건 매체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거라고 봐요.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관객은 오직 한 명, 즉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뿐일 것이라는 거죠. 그런 사진들은 다수의 감상자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반향이나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빌 제이: 자아의 역할을 증대시키는게 아니라 가능하면 감소시키고 주제만 강조한다면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세상에 도움이 될 텐데요. 농담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사진가들이라면 사진이라는 매체 역사를 통해 대개 한명의 개성으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주류 사진가들과 같은 존경스러운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치만 오늘날의 강조점은 개성과 개인주의 숭배에 있고 젊은 사진가들의 다수는 이런 단어들을 접하면 주제뿐만 아니라 자아를 내세우려고 안달을 한다고 봅니다. 뭔가 고무적인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데이비드 헌: 오늘날의 예술사진 분위기에서 주제물의 최고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겠죠!
제가 좀 장난스러워졌군요. 사실은 사진이란 건 가장 지루한 사물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모두 주관적인 거지요. 사진은 한 개인의 마음에서 생겨난 다양한 결정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그 자아라는 것이 사진 창조의 과정에 간섭하게 됩니다. 그 자아를 배제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자아란 건 이미지의 우선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이란 건 시각적 탐험의 부산물이지 그 목표가 아니예요. 개인적인 시각이란 건 개인적인 시각을 목표로 삼지 않는 데서만 나오는 겁니다. 오랜 기간을 두고 많고 많은 사진들을 거치고 나면 자아는 처음부터 자아를 목적으로 했을 때 보다도 더 강한 힘을 지니고 다시 등장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아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잘못하는 겁니다. 자아를 무시하면 자아가 드러납니다.
빌 제이: 별빛을 따라 숲속에 있는 내 통나무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것과 같은거죠. 길을 직접 쳐다보지 않아야만 방향을,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시 내 나무에 대한 비유를 들어보죠.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생명체, 그 가시적 물체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생장을 위해, 또 다음번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땅속에 묻혀 있어야만 하는 뿌리 조직으로만 지탱되는 겁니다. 이 비유가 한계점까지 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는 명료하고 면밀한 “물 자체”의 고찰이라는 생각을 그 생각을 받쳐주는 숨어있는 자아, 즉 사진가의 인생과 결부시키려고 고민해봤습니다.
데이비드 헌: 좋은 예는 아니지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저는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물 선택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요. 어떤 두 사람도 동일한 관심 목록을 만들거나 같은 방식으로 또는 같은 이유로 목록을 삭제해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적인 탐험을 하기 위해서 하나의 주제를 선택한다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당신은 자기자신을 내세우는 겁니다. 그리고 이 주제에 당신의 초점을 집중하면 할수록 당신은 그 주제에 대해서 점점 더 소전문가가 되며 그 주제가 확산되어 당신의 총체적인 의식의 본질적 부분으로 심화될 가능성도 더 커지는 겁니다.
빌 제이: 한 번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티비 회견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에게 전형적인 하루의 일과를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음악가는 아침 먹으면서 악보를 보고 오전에 음악을 작곡하고 걸으면서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오후에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저녁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음악 친구들을 만나 함께 연주해 보고 그리고는 잠자리에 들어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꾼다는 겁니다. 사회자는 경악했지요. 정말 좁아 터진 생활 아닙니까. "예," 바이올리니스트가 대답했습니다. "처음에 내 삶은 점점 초점이 좁아져 갔습니다. 그런데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 음악이 모래시계의 좁은 구멍을 흘러나오자 그 이후로 점점 더 넓어져 간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 음악은 삶의 모든 측면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헌: 실제적 의미에서 사진가는 백 퍼센트의 시간 동안 사진가입니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나는 미셸 드 몽테뉴의 에세이 네 편을 읽으면 끊임없이 그의 생각과 사진과의 연계성을 찾았습니다. 그 에세이들은 1500년대 후반에 쓴 것이긴 하지만 말이죠. 예를 들면 나는 언제나 내가 존경하는 사진가들과 영화를 보는게 매력적이라고 느낍니다. 당연히 그들의 이후 대화에서는 그들이 플롯, 대화, 연기, 카메라 각도, 진행속도 따위에서 찾아내고 그들 자신의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유용한 관찰내용을 토로합니다. 매사가 사진 방앗간에서는 빻을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수 십 가지의 배울거리 사건들이 매일 일어납니다. 이런 데서 얻은 모든 새로운 통찰은 사진의 주제로 다시 피드백되고 따라서 사진가의 정체는 그가 찍는 사진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요.
빌 제이: 궁극적 목적은 이미지가 정신과 세계 사이에 이렇게 과충전된 경계면을 물리적으로 현현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자아와 주제 사이의 진동입니다.
출 처 : 니콘 클럽
솔직히 같은 펜탁스 클럽의 표성기님 블로그에서 퍼왔다.
(근데 성기님두 다른 분 블로그에서 퍼오셨나보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이 가는 글이다.
한가지 장비로만 평생 쓸수는 없다는 것엔 동의한다.
하지만!!! '특정바디가 좋다더라~.' 이런 식(즉, 'XX 카더라.')의 장비 소유욕을 개인적으론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꼭....뭐랄까....흔히 하는 말로 돈지랄하는거 같다.
남들이 좋다는 그 바디와 자신과 궁합(?)이 안맞을 수도 있지않은가?
정 써보고 싶다면 그 바디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차라리 빌려서 써라.
고장내지 않는 범위내에서 말이다.
# by | 2005/03/07 10:23 | 사진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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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와 표현물에 대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